












“ 멍청하긴.. ”
생각이 조금 느슨해진 탓일까. 멋모르고 입 밖으로 새어나온 말에 청명은 방금 전까지 장난이 담겨 웃던 입매가 자신이 한 말을 끝으로 굳는 게 느껴져 인상을 썼다. 가볍게 넘어가려다 실패하니 이처럼 바보 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멍청한 건 자신이었나.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꼭 궁상맞은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웃다가 꼭 결국에는 이렇게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 걸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 지 얼마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자꾸만 되돌아오는 것이 전혀 좋지 않다.
그러니 괜스레 덕지덕지 붙은 얼굴의 피를 깨끗한 부분의 천으로 닦아내며 애먼 곳에나 화풀이를 했다. 누가 보면 아무도 없고 황량한 시체 더미 위에서 그러는 게 퍽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심신 안정에는 훨씬 도움이 되었다.
적당히 다 닦아내고 나면, 굳이 말하자면 더 이상 닦아 낼 천이 없었던 것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자신이 하던 행동을 끝내고 나면 정말로 할 것이 없어져 다시금 찾아올 것 같은 상념에 입만 꾹 다물었다. 보통이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적들이 오는 곳으로 달려가 생각조차 하지 않겠건만 이 빌어먹을 몸은 그세 몇 번 싸웠다고, 다리가 벌써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이런 청명에게는 애석하게도 그것을 고칠 의학적 소견이나 지식 같은 건 없었음으로 대충 버티고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만 두 팔은 멀쩡함으로 싸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누가 들으면 속 터질 소리나 태평하게 했다.
청명은 결국 머릿속의 공백을 떨쳐 내지 못하고 맨 처음의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후회는 때론 누군가를 연모하는 것만큼이나 진득한 감정이라는 문장. 그는 언젠가 살면서 들어 보았던 말을 문득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나이를 먹어도 기억력이 여전히 좋은 머리가 무언가를 쉬이 잊지는 않았을테니 기억하는 것이 이상할 노릇은 아니다. 다만 하필 이 순간에 그런 말이나 곱씹고 앉아있는 걸 보면 그냥 후회나 진득하게 하고 싶은 거였나보다. 어제 죽은 사제가 한 말인지 그저께에 죽은 사제가 한 말인지 아니면 이제는 시체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오래전에 죽은 사제가 한 말인지는 이상하게도 기억나지 않는 청명은 당보 때와 달리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사제에게 한 소리 하는 것보다는 지금은 그저 감정을 조금 더 곱씹었다.
확실히 문장에는 틀림이 없었다. 특히 진득하다는 그 말이. 이렇다 할 만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 단어를 단숨에 이해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러했다면 좋았을까 저러했다면 좋았을까.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질긴 것이 참 웃긴게 언제쯤 끝날 생각인지.
달빛 아래에 한참을 후회라는 이름으로 기억과 뒤엉켜 헤집고 있으면 청명은 언제인가 환해진 달빛이 그림자에 가려 순간 주위의 시야가 어두워질 때나 정신을 차렸다. 기습을 흔치않게 겪는 청명으로써는 시야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여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였다. 그렇게 왜 이렇게 굼뜨냐고 짜증을 부리고 있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느세 날은 어둑해진 티를 벗어나 밤이란 것을 증명하듯 하늘은 온통 새까맣게 보일 뿐이었다.
다만 그사이에 별이 희미해질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달은 구름이 비껴가니 덩그러니 놓여있어 정작 지상은 어둡게 물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야 바로 아래로 멀지 않는 거리에서 빛 하나 없어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겠지만 청명의 눈과 감이 그곳에 드디어 적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알렸다. 자신이 먼저 발견을 한 것은 당연했으나 조금 더 다가오면 저들 역시 아까부터 꼼짝하지않고 서 있는 자신의 존재를 얼마 가지 않아 눈치를 챌 것이다.
곧 다가올 두 번째 전투에 청명은 한숨과도 같은 숨을 내쉬자 입 안의 따뜻한 공기가 찬 공기와 마주하며 하얀 입김을 만들어 냈다. 그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세를 정돈한 뒤 다가올 앞일을 대비하여 고개를 정면으로 보고 날을 바짝 세웠다.
시간이 지나 계속 풀려가는 힘에도 검을 놓지 않고 잡고 있다 보면 날이 밝고 아침이 올 것이라는 말 역시도 기억하지만 해가 넘어가기 전, 청명에게는 아직 겨울도 밤도 긴 날이었다.
冬至 : 밤이 연중 가장 긴 시기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당연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