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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가 들이닥쳤다. 날 선 바람이 매화관의 문을 주기적으로 두드렸고, 문의 경첩은 버거운 투로 끼익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제자 중 한 명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다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뛰쳐나갔고, 잠시 뒤 코끝은 물론이거니와 손과 발이 전부 벌겋게 언 채로 돌아왔다. 울상이 된 그에게 이렇게 추운데 어딜 갔다 왔느냐고 넌지시 물어봤더니 우물거림 사이에 ‘방을 변소로 만들 순 없잖습니까.’라는 서글픈 대답을 끼워 돌려주었다. 변소를 찾아가는 것도 한참 고민해야 할 정도로 날카로운 온도였다.

 

          언제부턴가 이른 유酉시부터 해가 졌다. 밤이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었고, 한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화산은 그것을 반기지 않았다. 손과 발, 무장이 어는 겨울을 달가워할 문파가 어디있겠냐만은 화산은 유난히 정도가 심했다. 화산은 매화를 대표하는 문파였다. 떨어진 매화를 다시 피우기엔 꽤 난처한 겨울은 빈말로도 좋은 문파라 할 수 없는 몰락한 화산의 현 상황과 맞물려 가슴 한구석을 쓸쓸하게 했다. 윤종은 그런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았다.

 

          별안간 사제 주선이 이런 말을 했다. “사형, 개딸기가 먹고 싶습니다.” 윤종은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며 다시 물었고 주선은 멋쩍어하며 어릴 적 동지 때 아버지가 개딸기를 어렵게 얻어 주신 적이 있어, 동지가 가까워지면 항상 생각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얻어다 주셨든, 어머니가 얻어다 주셨든, 얻어다 주신 것이 개딸기든 딸기든 중요하지 않았다. 동지 때엔 개딸기를 얻을 수가 없다. 이는 저 소림도 힘든 일이라 윤종은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될 말이구나.” 사제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대사형은 오랜만에 귀하게 자란 자제를 볼 때 받아왔던 해묵은 심통을 가볍게 느꼈다.

 

          청자 배는 대부분 이러한 구성이었다. 어디 잘난 도련님이 칼 좀 쓰고 싶다고―그러나 누군가의 눈 밖에 날 만큼 큰 문파가 아니어야 하므로 화산에 가볍게 입문들 했다. 그리 배가 부른 사람들이니 ‘동짓날에 개딸기’를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말이 오늘따라 고깝게 들렸다. 추위가 찾아오면 인심이 박해진다. 윤종은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런 삐딱함마저 추위가 몰고 온 옹색함일지도 모른다.

          며칠 뒤, 주선이 앓아누웠다. 심한 열감기였다. 날도 추운데다 화산은 의약당이 활성화되어있는 곳이 아니라서 병의 차도는 더뎠다. 약 두 첩만 있으면 멀끔히 나을 수 있는 가벼운 병인데도 이런 엄동설한에 약을 구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윤종은―그것이 원인이 아님에도―그 전에 느낀 불퉁함에 죄책감을 느꼈다. 옮긴다며 찾아오지 말라고 재차 말해도 마음씨 좋은 사형은 다음에 한번 더 오겠노라고 하면서 계속 의약당을 찾았다. 주선이 의약당에 들어간지 오 일이 지난 날, 그는 힘없이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개딸기가 먹고 싶은 것을 보면 정말 먹고 싶긴 한가 봅니다.”

 

          그리고 주선은 저번에 아버지가 사온 개딸기도 실은 열감기가 든 자신을 달래기 위하여 특별히 구해온 것이랬다. 윤종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주선의 어버이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래로 밧줄을 꼬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내막도 모르고 배부른 사람이라며 아니꼽게 봤다니. 윤종의 어깨에 죄책감 한 근이 더해져 무거워졌다. 대사형의 어깨가 처진 것을 눈치챈 주선은 기침에 웃음소리를 섞었다.

          “마음 쓰지 마십쇼. 사제가 잠깐 어리광부렸다고 생각하시고―”

          격해진 기침에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숨을 고르는 주선을 보며 윤종은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언제나 했던 말,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제는 이젠 말리기도 지친다는 투로 손을 흔들었다.

 

          현종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당황했다. 윤종이 예의 바르게 살짝 숙인 고개로 현종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산의 장문인은 저러다간 제자의 몸이 굽은 채로 굳어버릴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자세를 바로하게 했다. 실제로 현종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상당한 간격을 두고 나왔기에 계속 그리 두었다가는 정말로 굳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도호조차 받지 못했지만 윤종은 청자 배의 대사형이었고 이삼대제자들을 통틀어 비교해봤을 때도 손에 꼽힐 만큼 화산에 오래 있었던 아이이다. 또 다른 아이처럼 관계에 미숙해 본인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니 화산의 사람을 특별히 여기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동지도 다가오는데 개딸기를 구하러 가겠다고? 현영은 혀를 쯧 찼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려 그러느냐?”

          “주선이가 먹고 싶다고 하기에 그럽니다.”

          현영은 본인의 말을 주워 담고 싶어졌다. 이 추운 날씨에 땀을 삐질 흘리며 ‘쓸데없는’이란 대목에 취소선을 죽 그어 머릿속에 지워버린 현영을 뒤로하고 현상이 말했다.

          “이 날씨에 구하러 내려가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 꼭 내려가야 하겠느냐.”

          “옛적에 저와 같이 아플 때, 아버지가 개딸기를 구해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가족의 정은 간혹 병을 낫게 하니, 그것을 떠올리게 하여 기운을 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현영은 취소선을 그은 대목에 아예 먹칠을 해버렸고 현상은 곤란하게 웃으며 현종을 바라보았다. 이래선 말리기도 난감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는 어른들의 안쓰러움을 샀지만, 그러다 한번 무언가를 바라면 끝까지 고수하여 어른들의 골치를 유쾌하게 썩혔다. 현종은 그런 아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애초부터 말릴 수 없다고는 생각했다. 현종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종의 얼굴이 펴졌다.

          “단, 열흘 내에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는데 돈이 심하게 들어 예산을 벗어나면 그대로 돌아오거라. 고뿔 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윤종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열흘이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후에 생각해보면 안일하다 못해 물러터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冬至 : 밤이 연중 가장 긴 시기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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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동지冬至를 같이 견뎌온 동지同志

동짓날에 개딸기

※ 창작 조연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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