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려줘서 고마워요! 사형, 급한 마음은 알겠는데 그만 비틀대고 갑시다.”
“그래, 응.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종은 거의 끌려가다시피 걸어갔다. 과하게 얹어진 동전과 잔돈, 그리고 빠른 속도로 작아지는 어린 도사들을 보며 점소이는 얼떨떨하게 웃었다.
싸라기눈이 내렸다. 며칠 동안 눈이 내리진 않고 녹기만 하더니, 구름은 전부 녹아 바닥이 보일 지경이 되어서야 눈의 부재를 깨달았다. 급하게 내리는 눈이었기에 함박눈일 수는 없었고, 그 덕에 쌀알을 닮은 싸라기눈이 하늘에서 톡톡 떨어졌다. 윤종은 벌개진 코를 열댓 번째로 비비며 바닥에 덮힌 눈을 뒤적였다. 조걸은 발로 바닥을 몇 번 툭툭 쳐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팍 차며 신경질을 냈다.
“에라이, 썩을! 하루만 더 빨리 알았어도 더 쉽게 찾았을 텐데!”
조걸은 하늘을 노려보았고, 눈雪은 바람을 타고 조걸의 눈目에 쏙 들어가 버렸다. 가뜩이나 짜증이 나 있던 그는 질색하며―“해도 눈도 쌍으로, 또 눈이야!”―눈을 비볐다. 조걸이 그 난리를 치고 있음에도 윤종은 계속해서 묵묵히 눈을 뒤집었다. 흙색이 섞여있던 눈은 이젠 그 위에 덮히고 또 덮혀 완연한 흰색으로 바뀌어있었다. 개딸기는 흰색 사이에 피어난 빨간색이므로 눈에 재깍 띌 법도 한데 붉은색은커녕 지금 그 산에서 채색이 되어있는 것은 두 제자 이외엔 없었다. 별 소득 없이 날은 빠르게 저물어갔다. 싸라기눈은 이젠 함박눈으로 바뀌어있었다. 언뜻 빨강이 보인 것 같아 눈을 파보면 황혼이 비춘 환영이었다. 조걸은 다 얼어 부들거릴 뿐 움직여지지도 않는 손을 보며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생각하였다.
“사형.”
목은 살짝 나가 있었다. 윤종은 조걸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더 나은 상태는 아닐텐데도 계속해서 찬 눈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눈가를 일그러트린 그가 와락 달려가 윤종의 손목을 확 낚아채었다.
“사형! 그러다 손 상합니다! 검수가 될 사람이 손을 그리 막 써도 되는 겁니까?”
조걸의 일갈에 윤종의 손길이 멈췄다. 손은 본래의 색을 잃고 다만 붉게 얼어있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은 겨울 한밤중의 추위를 시각화했다. 조걸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선이 그놈이 몸을 이렇게 혹사시키며 찾아온 개딸기를 고마워할까요?”
“주선이를 위한 것뿐만이 아니다.”
윤종의 입에서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무언가 더 말하려 했던 조걸이 입을 다물고는 조용히 미간을 의문으로 굽혔다. 그가 말을 멈춘 것은 윤종이 한 말에 대한 호기심에서 나온 행동이었겠지만 윤종은 그것을 배려라고 생각하기로 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대사형으로서, 아니, 대사형이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미안한 일을 저질렀다. 나는 주선이 했던 말을 섣불리 꼬아서 들었다. 물정 모르는 도련님의 응석이라고 생각했었지.”
도련님이란 말에 조걸의 어깨가 잘게 움찔했다.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윤종은 그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삼대 제자에는 대략 할당만 채우고 하산할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 사제들은 화산이 다시 부흥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확신하고 있을 사람이 손에 꼽히는 정도로만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래, 동짓날에 개딸기 구하는 꼴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윤종은 잠시 말을 쉬었다. 조걸이 굳게 다문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조걸 조차도 그러한 이유로 화산에 입문했다.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그는 몇 년 안 있어 화산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하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윤종은 그것을 탓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화산은 몰락한 문파이고, 그 안에서 직접 지내 온 사람들의 감상은 뻔하다면 뻔하지.”
조걸은 둔탁한 충격을 받았다. 대사형의 입에서 ‘몰락한 문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윤종은 모두가 화산이 망했다고 외치더라도 그곳에 남아 묵묵히 버티고 있을 사람이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윤종은 조걸의 충격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꿈의 감상을 되새기며, 그는 미소짓고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집이자 문파이다. 그렇기에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짓날에 개딸기를 구해오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윤종의 눈가가 살짝 어그러졌다.
“그래, 내 잘못에 대한 죄책감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되려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구나.”
조걸은 싫증을 완전히 가라앉혔다. 대신 날씨와는 대비되는 온도의 미소를 입에 걸었다.
“사형, 그런 말씀 마십쇼. 아직 팔 일째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들 하죠. 우리는 화산의 도인이니 이런 산 따윈 간단하게 정복해버릴 수 있을 겁니다―”
“위로 고맙구나. 날도 저물었으니 오늘은 이만 내려가도록 하자. 오늘은 동지라 가장 밤이 길다.”
그러나 조걸은 윤종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제 귀밑을 가로지르는 곳에 시선을 꽃은 사제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인 윤종은 그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뽀얀 색 털을 가진 산토끼가 눈 위를 거닐고 있었다. 토끼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 동물이니 지금 이곳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딱히 이상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토끼는 뛰어다니며 간헐적으로 눈과 땅을 갈아엎었다. 그랬기에, 파묻혀있던 붉은색 열매는 별안간 모습을 드러내었다. 흰색 눈과 검은색 나무, 그 사이에 빨갛게 찍은 점이라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도 없는 점이었다. 윤종과 조걸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곧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다지 우스운 꼴이 아님에도, 둘은 한참 동안 배를 붙잡고 눈물까지 보여가며 웃었다.
손과 코, 볼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귀환한 삼대 제자들의 모습은 장로들의 걱정을 샀으나, 청자 배를 이끌어갈 의젓한 사형들은 나온 코를 슥 닦고는 씩씩하게 의약당으로 직행했다. 의약당원은 그들에게 추위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다면 면역에 취약해졌을 것이라며 주선과의 만남을 기각했으나, 그들이 들고 온 개딸기를 본 당원은 감히 면회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의약당에 들어갔을 때, 주선은 마른 입을 벌리며 겨우 죽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선은 제 사형들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추호도 예상해내지 못했다.
冬至 : 밤이 연중 가장 긴 시기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한글
동지冬至를 같이 견뎌온 동지同志
동짓날에 개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