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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인동

梅花忍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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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객잔이라."

"왜 그러느냐, 청명아?"

"아, 아무것도 아니야, 사숙. 그냥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아서..."

"자하紫霞잖아. 모르는 게 이상함."

 

유이설이 청명의 뒤를 지나가며 핀잔을 주듯 말했다. 내가 뭐, 자하신공 몰라서 이러나. 툴툴댄 청명이 객잔 안을 쭉 훑어보았다. 눈에 익은 구조인 듯하나 것은 우연일까. 2층에다 작은 정원이 하나 딸려 있다.

내가 백 년 가까이 살면서 객잔을 얼마나 많이 다녀 봤는데, 우연이겠지. 그리 단정짓고 넘긴 청명이 코를 킁킁거렸다. 익숙한 향이 그의 코를 간질인 탓이다.

 

"...매화주인가?"

"너는 여기까지 와서 술을 찾느냐..?"

"동룡이는 조용히 해."

 

인상을 팍 찡그린 백천을 윤종과 조걸이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내 소곤거리는 소리가 백천의 귀에 들어왔다.

 

"사형, 사숙께서는 어찌하여 이름이 저따구로 지어지셔서 청명이 놈한테 이런 수모를 당하시는 걸까요."

"걸아. 사숙께 턱을 후려까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조용히 하거라."

"...아니, 근데 제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다 들리니 알아서들 조용히 하거라."

 

아, 매화주가 아니라 매화 그 자체였구만. 백천과 조걸, 윤종이 투닥거리거나 말거나. 향이 풍겨온 곳을 향해 청명이 고개를 돌렸다. 객잔 뒷편의 정원인 듯했다.

입춘立春인가. 온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 새 생명을 틔우는 시기, 화산에도 구석구석 매화가 만개하여 짙은 암향이 흐르는 시기라는 것은 요즘 들어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알고 있었건만 직접 확인하니 새롭다.

잠시 묵으려고 들른 객잔 정원에서 매화나무를 발견할 줄이야. 정원이라 하기에도 뭣하고 매화나무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수준이었지만. 익숙한 것을 찾아서인지, 괜히 반가워서 매화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던 청명의 눈에 나무에 난 깊은 흠 하나가 들어왔다.

 

흠?

이런 객잔에 있는 매화나무에, 흠이 날 만한 일이 있나?

 

"..사숙, 사고, 사형들.. 사매는, 먼저 들어가서 자든지 쉬든지 알아서 하고 있어. 거기 혜연이도."

 

평소라면 객잔이라도 한 바퀴 뛰고 오라며 버럭했을 청명이 의외로 순순히 보내주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이설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이설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청명의 눈이 가라앉은 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사고?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유이설이 제 팔을 감싼 당소소를 흘끗 보고는 살짝 웃었다.

...사질은, 더 파고들었다간 더 숨기려 들 테니 먼저 얘기해 주기 전에는 가만 있는 게 낫겠지.

 

당소소가 조잘조잘 말하는 소리와 유이설이 짤막한 대답을 해 주는 소리, 조걸이 웬일이냐며 신나 떠드는 소리와 입을 다물라 하는 윤종의 낮은 목소리가 청명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백천, 유이설, 조걸, 윤종, 당소소, 그리고 혜연이 방으로 올라간 것을 확인한 청명이 정원에 나가 급히 매화나무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흠이 나 있었다. 깊숙히 남겨진 상흔도 있는 게 보통의 맹수가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이런 객잔까지 맹수가 올지도 의문이지만..

청명이 조심스레 흠을 어루만졌다. 틀림없이 비도가 낸 것이다.

어찌 기억하지 못했을까?

이곳은, 그래. 청명이 당보를 처음 마주한 곳이었다. 또한 매년 목구멍 뒤로 암향을 넘기며 봄의 시작을 함께 맞이했던 곳이다.

 

- 당신이 매화검존이요? 어디 한번 붙어 봅시다!

 

그리 말한 뒤에 냅다 팔을 향해 비도가 날아오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청명을 하나도 맞히지 못한 당보의 비도 중 상당수가 저 나무에 박혔더랬다. 장포의 넓은 소매 안에서 끊임없이 비도를 던지는 게 기가 차서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미 흘러갈 대로 흘러가서 다시는 온전히 느낄 수 없는 나날을 그리워 한 지 오래, 이제는 무뎌졌다 생각했건만. 이 나무에 난 흠이 깎여나가고 옅어졌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당보야, 네 흔적을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매화나무가 참 아름답지요?"

"...예."

 

청명이 나무에 손을 대고 흠을 어루만지던 사이 그의 옆으로 걸어온 노인이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띄웠다.

 

"이 객잔은 저희 할아버님 대부터 운영하던 것인데, 매화나무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죠. 지금은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지만.. 이 매화나무에 난 크고 작은 흠은, 매화검존을 처음 마주하신 암존께서 남기신 것이라 하더이다. 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흠이 눈에 띄게 남은 것을 보면 얼마나 화려한 비무였을지 예상이 가더군요."

 

...비무라고 하기엔 내가 당보 녀석을 일방적으로 팼던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매화검존이란다, 아해야. 노인의 말을 정정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대 최고의 고수로 이름을 날리시던 분들이 그 이후로 매년 봄만 되면 저희 객잔을 찾으셨고, 점점 입소문을 타 손님들 또한 많아져서 이 근방에선 나름 유명해졌습니다. 그분들은 모르실 수 있으나.. 은혜를 입은 셈이죠."

 

그럼 좋은 밤 되시길. 가볍게 목례를 한 노인이 천천히 빛이 새어 나오는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말없이 그를 지켜본 청명의 입을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정말로, 우리가 매년 매화가 기지개를 켜는 것을 같이 보던 곳이구나.

 

 

 

 

大雪 :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시기

태양의 황경은 255도에 도달한 때이다.

이날 눈이 많이 오면 이듬해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난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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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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